우리가 매일 먹는 빵, 과자, 라면의 가격이 유독 비싸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단순한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이 아니었다. 국내 설탕과 밀가루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온 대기업들이 수년간 가격을 짜고 올린 '담합'의 결과였다.
2026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이 동시에 칼을 빼 들었다. 설탕 제당 3사에 역대급 과징금 4,083억 원이 부과됐고, 밀가루·설탕·전력설비 담합에 연루된 52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검찰이 파악한 담합 규모만 약 9조 9,404억 원에 이른다.
이 글에서는 이번 담합 사건의 전체 구조, 관련 기업별 제재 내역, 소비자에게 미친 영향, 그리고 정부의 후속 대응까지 2026년 2월 기준 최신 정보를 기반으로 빠짐없이 다룬다.
설탕 담합 사건의 전모와 과징금 4,083억 원 부과 배경
공정거래위원회는 2026년 2월 12일,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제당 3사가 4년여간 설탕 B2B 판매 가격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4,083억 1,300만 원(잠정)을 부과했다. 이는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가운데 총액 기준 역대 두 번째, 업체당 평균 부과 금액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에 해당한다.
업체별 과징금 부과 내역
| 업체명 | 과징금 | 관련 매출액 비중 | 비고 |
|---|---|---|---|
| CJ제일제당 | 1,506억 8,900만 원 | 시장점유율 1위 | 검찰 기소 대상 |
| 삼양사 | 1,302억 5,100만 원 | 시장점유율 2위 | 검찰 기소 대상 |
| 대한제당 | 1,273억 7,300만 원 | 시장점유율 3위 | 리니언시 적용(기소 면제) |
| 합계 | 4,083억 1,300만 원 | 관련 매출액 3조 2,884억 원 | 업체당 평균 1,361억 원 |
이 3개 제당사는 국내 설탕 시장의 약 89 - 90%를 과점하고 있으며, 설탕은 제조에 대규모 장치가 필요하고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는 품목이라 수입이 자유롭지 않아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시장이다.
담합의 구체적 방식
제당 3사는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8차례(인상 6차례, 인하 2차례)에 걸쳐 설탕 가격 변경의 폭과 시기를 합의했다. 담합 방식은 극도로 조직적이었다.
원당 가격이 오르는 시기에는 상승분을 신속히 반영하기 위해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 합의했고, 가격 인상을 수용하지 않는 수요처에는 공동 압박을 가했다. 반대로 원당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하락분보다 설탕 가격을 더 적게 인하하고, 인하 시기를 의도적으로 늦추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했다.
대표급, 본부장급, 영업임원급, 영업팀장급 등 직급별 모임과 연락을 통해 가격이 합의됐다. 특히 영업팀장들은 많게는 월 9차례 모임을 갖고 가격 변경 시기, 폭, 거래처별 대응 방안 등 세부 실행 방안을 논의했다. 공정위가 확보한 대한제당 담당자의 메신저 대화에는 "C사(CJ제일제당)가 결심한 것 같다"는 내용이 있었고, 내부 보고 자료에는 'CJ 제안사항'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 이번 담합에서 수요처별 점유율이 가장 높은 제당사가 가격 협상을 주도하는 '역할 분담' 구조가 드러났다. 예를 들어 A음료회사는 CJ가, B과자회사는 삼양사가, C음료회사는 대한제당이 주도적으로 협상하는 식이었다. 이는 단순한 가격 합의를 넘어 시장 전체를 체계적으로 통제한 것이다.
반복되는 담합의 역사
이번 제재가 충격적인 이유는 최초 적발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당 3사는 2007년에도 15년간의 담합 혐의로 공정위에 과징금 511억 원을 부과받은 전력이 있다. 제재를 받고도 불과 14년 만에 동일한 행위를 반복한 것이다. 심지어 2024년 3월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1년 이상 담합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7년 담합 제재 당시 과징금은 511억 원이었으나, 이번에는 그 8배에 달하는 4,083억 원**이 부과됐다. 이는 반복 위반에 대한 가중 제재의 성격이 강하며, 향후 추가 위반 시 더욱 강력한 처벌이 예상된다.
밀가루 6조 원대 담합과 검찰의 무더기 기소
설탕 담합에 앞서 밀가루 시장에서는 더 큰 규모의 담합이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2026년 2월 2일, 밀가루·설탕·전력설비 담합에 관련된 52명을 무더기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밀가루 담합 사건 개요
국내 밀가루 시장의 약 75%를 차지하는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CJ제일제당 등이 담합을 주도했다. 2020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간, 밀가루 가격의 변동 여부·변동 폭·시기 등을 상호 합의를 통해 결정했다.
| 구분 | 밀가루 담합 | 설탕 담합 | 한전 입찰 담합 |
|---|---|---|---|
| 담합 규모 | 5조 9,913억 원 | 3조 2,715억 원 | 6,776억 원 |
| 담합 기간 | 2020.01 - 2025.10 | 2021.02 - 2025.04 | 2015.03 - 2022.09 |
| 기소 인원 | 20명(불구속) | 13명(구속 2명 포함) | 19명(구속 4명 포함) |
| 관련 기업 | 대한제분·사조동아원·CJ제일제당·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6개사 |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3개사 | 효성·현대·LS 등 10개사 |
| 가격 인상폭 | 최고 42.4% | 최고 66.7% | 부당이득 약 1,600억 원 |
검찰에 따르면, 담합 기간 밀가루 가격은 최고 42.4%까지 인상됐으며, 일부 상승세가 꺾인 후에도 담합 이전 대비 22.7% 더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밀가루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6.12%로,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약 2배에 달했다.
검찰은 밀가루 담합의 부당이득액을 4가지 방식으로 산정했다. 업체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는 약 1,070억 원, 가장 불리한 방식으로는 약 3,124억 원이다. OECD 기준(매출액의 15%)을 적용하면 부당이득액은 8,986억 원**에 달한다.
증거 인멸 시도와 조직적 대응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업체들의 조직적인 증거 인멸 시도가 드러나 충격을 줬다. 업체들은 공정위를 '공선생'이라고 부르면서 "공선생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연락은 자제하자"고 말한 녹취가 확보됐다.
한 업체는 '방지대책' 문건을 통해 직원들에게 하드디스크를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망치로 파손 후 배출 처리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는 담합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적발을 회피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움직였다는 증거다.
또한 밀가루 시장에서 삼양사가 독자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려 하자, 대한제분·사조동아원·CJ제일제당이 "가격 인하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 정황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는 가격 경쟁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 한 것으로 시장 경쟁 체제를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다.
**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이 대한제분과 사조동아원 전·현직 대표 4명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검찰은 불구속 기소로 전환했으나, 대표급 임원 2명(설탕 담합 관련)은 구속 기소에 성공했다.
대통령 질타와 후속 가격 인하, 향후 전망
대통령의 강력 발언과 업계 반응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2월 3일 국무회의에서 담합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계란 훔치면 처벌하지 않냐. 기업이 진짜로 놀랄 수준의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공권력을 총동원해 독과점과 담합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우리나라 빵 값이 다른 나라보다 유독 비싸다는 지적이 많은데 밀가루나 설탕 가격 때문 아니냐"며 식품 물가 담합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식품업계에서 줄줄이 가격 인하가 이어졌다.
| 업체 | 인하 품목 | 인하율 | 시행 시기 |
|---|---|---|---|
| CJ제일제당 | 설탕(B2C) 15개 품목 | 평균 5%(최대 6%) | 2026년 2월 |
| CJ제일제당 | 밀가루(B2C) 16개 품목 | 평균 5.5% | 2026년 2월 |
| 삼양사 | 설탕·밀가루 | 가격 인하 발표 | 2026년 2월 |
| 대한제분 | 밀가루 일부 제품 | 평균 4.6% | 2026년 2월 1일부터 |
| 대상 | 올리고당·물엿 전 제품 | 인하 발표 | 2026년 2월 13일 |
** CJ제일제당은 이미 2026년 1월 초에 B2B(업소용)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각각 평균 6%, 4% 먼저 인하한 바 있다. 이번 2월 인하는 일반 소비자용(B2C) 제품까지 확대한 것으로, 검찰 기소와 대통령 발언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CJ제일제당·삼양사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CJ제일제당과 삼양사는 공정위 과징금 의결 직후인 2026년 2월 12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CJ제일제당은 설탕 제조 기업들의 이익단체인 대한제당협회에서 탈퇴한다고 밝혔다. 협회가 경쟁사 간 접촉의 통로로 활용됐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또한 임직원의 타 설탕 기업 접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해 즉시 중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삼양사도 같은 날 제당협회 탈퇴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에 향후 3년간 설탕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도록 하는 가격 보고 명령을 포함시켰다. 다만 당초 검토했던 '가격 재결정 명령'은 이미 제당사들이 가격을 인하해 법 위반 상태 지속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적용하지 않았다.
전분당·계란·돼지고기까지 확대되는 조사
공정위의 담합 조사는 설탕과 밀가루에서 멈추지 않는다. 2026년 1월 9일, 공정위는 전분당(물엿·올리고당·과당) 업체들에 대한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전분당은 옥수수 전분을 원료로 한 감미료로, 음료·과자·유제품 등 대부분의 가공식품에 원료로 사용된다. 조사 대상에는 대상, 삼양, 사조CPK, CJ제일제당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계란, 돼지고기 등 주요 민생 품목에 대한 담합 조사도 진행 중이다. 공정위 주병기 위원장은 "민생 분야 위법 행위에 대해 엄정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담합에 가담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 달러 이하 벌금에 처한다. 반면 한국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수준이 크게 낮다. 검찰은 재발 방지를 위해 법정형 상향과 개인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비자가 받은 피해와 이번 사건의 의미
'빵플레이션'과 '슈거플레이션'의 실체
최근 몇 년간 빵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을 가리켜 '빵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설탕 관련 물가 급등을 의미하는 '슈거플레이션'이라는 말도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이번 검찰 수사로 이 현상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기업들의 조직적 가격 담합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설탕 가격은 담합 이전 대비 최고 66.7%까지 상승했다. 밀가루 역시 최고 42.4%까지 올랐다. 이 가격 인상은 빵·라면·과자·음료 등 식품 물가 전반의 상승으로 이어졌고,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검찰은 "빵·라면 등 국민 식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원재료의 가격 담합으로 식품 물가가 오르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전가됐다"고 밝혔다.

독과점 시장 구조의 근본적 문제
이번 사건은 단순히 몇몇 기업의 탈법 행위가 아니라, 한국 식품 원자재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설탕 시장은 3개사가 약 90%를, 밀가루 시장은 상위 3개사가 약 75%를 과점하고 있다. 높은 관세와 대규모 장치산업이라는 특성상 신규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이런 폐쇄적 시장에서 소수 사업자들은 경쟁 대신 담합을 선택할 유인이 크고, 실제로 2007년 제재 이후에도 동일한 행위가 반복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업체 내부에서는 "담합 안 하는 데가 어딨냐, 재수 없게 걸렸다"라는 발언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 공정위는 이번 과징금 부과와 함께 '설탕 시장 경쟁 촉진'을 위한 구조적 대책도 검토 중이다. 관세 인하나 수입 다변화 등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는 담합 재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시도다.
이번 10조 원대 담합 사건은 한국 공정거래 역사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역대급 과징금 부과, 대표이사급 구속 기소, 대통령의 직접적 질타까지 이어진 이번 사태는 과거와는 다른 수준의 제재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핵심은 이 제재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가 발표한 협회 탈퇴와 경쟁사 접촉 금지 조치가 형식에 그치지 않으려면, 독과점 시장 구조 자체를 개선하는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 검찰이 지적한 대로 담합에 대한 법정형 상향과 개인 처벌 강화가 국회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식품 원자재 가격의 투명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공정위 홈페이지에서 담합 관련 신고와 자진신고 제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부당한 가격 인상이 의심될 때 적극적으로 제보하는 것이 시장 정상화에 기여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