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먹는 과자, 음료, 라면, 빵, 아이스크림의 가격이 7년 넘게 인위적으로 부풀려졌다면 어떨까. 2026년 3월 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전분당 제조 4개사의 6조 2,000억 원 규모 가격 담합을 공식 적발하면서 대한민국 식품업계에 거대한 충격파가 퍼졌다. 설탕 담합(과징금 4,083억 원), 밀가루 담합(관련 매출 5조 8,000억 원)에 이은 세 번째 식품 원료 담합 사건이며, 관련 매출액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전분당은 일반 소비자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핵심 원재료다. 이 담합이 우리 밥상 물가에 미친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부터 전분당이 정확히 무엇인지, 담합 사건의 전체 흐름은 어떠한지, 그리고 소비자와 시장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 것인지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전분당이란 무엇인가: 정의와 종류, 쓰임새
전분당(澱粉糖, starch sugar)은 옥수수 등의 곡물에서 추출한 전분을 가수분해(물과 반응시켜 분해)하여 만든 당류의 총칭이다. 한마디로 옥수수를 분쇄해 얻은 전분 자체와, 그 전분에 물과 효소를 가해 분해한 물엿, 포도당, 액상과당, 올리고당 등을 통틀어 전분당이라 부른다.
전분당의 주요 종류는 다음과 같다. 액상포도당은 전분을 가수분해해 얻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당이다. 결정포도당은 액상포도당을 농축·결정화한 것으로 의약품이나 분말 조미료에 쓰인다. 물엿은 전분을 적당한 수준까지만 분해해 만든 점성이 높은 시럽이다. 액상과당(고과당 옥수수 시럽, HFCS)은 포도당에 효소를 가해 과당 비율을 높인 것으로 탄산음료와 가공식품에 대량으로 사용된다. 올리고당은 저칼로리 감미료로 건강 지향 소비자층에 인기가 높다.
| 전분당 종류 | 주요 특징 | 대표 사용처 |
|---|---|---|
| 물엿 | 높은 점성, 광택 부여 | 떡, 한과, 소스류 |
| 액상과당(HFCS) | 설탕보다 강한 단맛, 저비용 | 탄산음료, 주스, 과자 |
| 결정포도당 | 분말 형태, 빠른 용해 | 의약품, 분말 조미료 |
| 올리고당 | 저칼로리, 장 건강 도움 | 건강식품, 음료 |
| 전분(분말) | 증점·결착 기능 | 라면, 제과, 제빵, 산업용 접착제 |
국내에서는 연간 약 200만 톤의 옥수수를 가공해 140만 톤의 전분을 생산하며, 이 중 약 65%가 전분당 원료로 투입된다. 전분당은 식품 산업뿐 아니라 제지, 섬유, 건축자재의 접착·코팅·결합 등 산업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소재다.
** 전분당과 설탕은 모두 감미료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추출한 자당(수크로스)이고, 전분당은 옥수수 등 곡물 전분을 효소로 분해해 만든 포도당·과당 혼합물이다. 가격이 설탕보다 저렴하고 가공이 용이해 대규모 식품 제조에 널리 쓰인다.
7년 6개월, 6.2조원 담합의 전체 경위
담합의 시작과 구조
공정위 심사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 CJ제일제당, 삼양사, 사조CPK 등 4개사는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7년 6개월에 걸쳐 전분당 판매 가격을 반복적·조직적으로 합의했다. 이들 4개사는 국내 전분당 B2B(기업 간 거래) 판매 시장에서 약 9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사실상의 과점 사업자들이다. 전분당 거래의 99%가 B2B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4개사의 가격 합의는 곧 국내 전분당 시장 전체의 가격을 좌지우지한 것과 다름없다.
적발 경위: 설탕 담합에서 꼬리를 잡히다
이 사건이 드러나게 된 계기는 설탕 담합 사건이었다. 공정위가 2025년부터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제당 3사의 설탕 가격 담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분당 관련 가격 합의 정황이 포착됐다. 이를 단서로 공정위 심사관은 2025년 10월부터 2026년 3월 초까지 약 142일간 집중 조사를 진행했고, 조직적 담합 행위를 확인해 심사보고서를 완성했다.
공정위는 2026년 3월 5일 4개 업체에 심사보고서를 송부하고 같은 날 전원회의에 사건을 상정해 심의 절차를 공식 개시했다.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공소장에 해당하는 문서로, 향후 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가 결정된다.
관련 매출액과 과징금 전망
이번 담합 행위로 영향을 받은 관련 매출액은 6조 2,000억 원으로 산정됐다. 이는 밀가루 담합(5조 8,000억 원)과 설탕 담합(약 2조 8,000억 원)을 모두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으므로, 산술적으로 최대 1조 2,400억 원의 과징금이 가능하다.
| 담합 사건 | 관련 매출액 | 과징금(부과 또는 예상) | 연루 기업 수 |
|---|---|---|---|
| 전분당 담합(2026) | 6조 2,000억 원 | 최대 1조 2,400억 원(예상) | 4개사 |
| 밀가루 담합(2026) | 5조 8,000억 원 | 최대 1조 1,600억 원(예상) | 7개사 |
| 설탕 담합(2026) | 약 2조 8,000억 원 | 4,083억 원(확정) | 3개사 |
| LPG 담합(2010) | - | 6,689억 원(확정, 역대 1위) | 7개사 |
** 위 과징금 예상치는 관련 매출액에 법정 최대 부과율 20%를 단순 적용한 수치다. 실제 과징금은 위원회 심의를 거쳐 담합의 중대성, 기간, 시장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되므로 최종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설탕·밀가루에 이은 연쇄 담합: 식품업계 전방위 카르텔의 실체
연쇄 담합의 타임라인
2026년 들어 공정위와 검찰은 식품 원료 분야에서 전례 없는 연쇄 담합을 적발하고 있다. 2월 2일 검찰이 밀가루·설탕 담합 관련 52명을 기소하면서 수사의 포문을 열었다. 설탕 담합에서는 CJ제일제당과 삼양사 임원 2명이 구속 기소되고 9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밀가루 담합에서는 6개사 대표이사를 포함한 20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2월 12일에는 공정위가 설탕 담합 제당 3사에 과징금 4,083억 원을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2010년 LPG 담합(6,689억 원)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규모의 과징금이며, 업체당 평균 1,361억 원으로는 역대 최대였다. 불과 8일 뒤인 2월 20일에는 밀가루 담합 7개사에 대한 심사보고서가 전원회의에 상정됐고, 20년 만에 가격 재결정 명령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2월 23일 검찰은 전분당 담합 혐의로 CJ제일제당, 대상, 삼양사, 사조CPK 등 4개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3월 4일에는 검찰이 공정위에 이들 4개사에 대한 고발요청권을 행사했고, 공정거래법상 공정위는 검찰총장의 고발 요청에 의무적으로 응해야 한다. 그리고 3월 6일 공정위가 전분당 담합 심사보고서를 공식 송부하면서 세 번째 대형 담합 사건의 심의가 개시됐다.
반복 담합 기업의 문제
특히 주목할 점은 CJ제일제당과 삼양사가 설탕, 밀가루, 전분당까지 올해만 세 차례 공정위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는 사실이다. 두 기업은 이미 2007년에도 설탕 담합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당시 CJ제일제당은 227억 원, 삼양사는 18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년 가까이 지난 뒤에도 동일한 기업이 동일한 유형의 위법행위를 되풀이한 것이다.
** 공정거래법상 과거 담합 전력이 있는 기업이 재범할 경우 과징금 산정 시 가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설탕 담합에서 제당 3사의 관련 매출액 대비 과징금 비율이 약 15%로 높게 책정된 배경에도 이러한 재범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자 물가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
가공식품 가격 상승의 숨은 원인
전분당은 라면, 과자, 음료, 빵, 아이스크림, 유제품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의 기초 원료다. 공정위 유성욱 조사관리관은 "전분당을 기본 원료로 쓰는 과자 등의 경우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7년 넘게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된 전분당 가격이 가공식품 출고가를 끌어올리고, 이것이 최종 소비자 가격에 전가됐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전분당의 B2B 시장 특성상 일반 소비자는 담합 사실을 직접 인지하기 어렵다. 올리고당이나 물엿처럼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제품보다는, 식품 제조업체에 원료로 납품되는 전분·액상과당·포도당 등의 가격이 담합의 주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업체들의 선제적 가격 인하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업체들은 빠르게 가격 인하에 나섰다. 대상은 2026년 2월 13일 청정원 올리고당류 3종과 물엿 등 B2C 제품 가격을 5%, B2B 제품 가격을 3 - 5% 인하했다. CJ제일제당과 사조CPK도 2월 23일 전분, 물엿, 과당 등 주요 전분당 품목의 B2C 및 B2B 가격을 3 - 5% 낮췄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러한 자율 인하가 충분한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유성욱 조사관리관은 "가격 인하 폭이 적정한지 등도 감안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담합으로 부풀려진 가격을 원상복구하기 위해 가격 재결정 명령까지 심사보고서에 포함시켰다. 가격 재결정 명령이 내려지면 기업은 담합 가격을 무효로 하고 60일 이내에 경쟁 상황을 가정한 합리적 가격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
** 가격 재결정 명령은 과징금과 별개로 이루어지는 시정 명령이다. 마지막으로 실제 적용된 사례는 2007년으로, 이번 밀가루 담합에서 20년 만에 부활한 데 이어 전분당 담합에서도 연달아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민생 물가 안정에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향후 전망: 과징금 확정과 형사 처벌 수순
공정위 심의 일정
심사보고서를 송부받은 4개 업체는 8주 이내에 서면 의견을 제출하고 증거 자료를 열람·복사할 수 있는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정위는 이 절차가 종료되는 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전원회의를 개최해 최종 제재 수위를 확정할 계획이다.
전분당 가격 담합 외에도 공정위는 일부 실수요처에 대한 입찰 담합과 전분당 부산물(글루텐피, 섬유질 등 사료용) 가격 담합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추가 사건들의 결과에 따라 관련 매출액과 과징금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
검찰 수사와 형사 처벌
검찰은 이미 2026년 2월 23일 4개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3월 4일에는 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공정위는 검찰 요청에 따라 고발을 완료한 상태다. 설탕 담합에서 임원 2명 구속 기소, 밀가루 담합에서 대표이사 포함 20명 불구속 기소가 이뤄진 전례를 고려하면, 전분당 담합에서도 임직원에 대한 형사 처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심사보고서는 공정위 심사관이 조사 과정에서 파악한 위법성과 조치 의견을 기재한 문서로, 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 최종 과징금 규모, 시정 명령의 범위, 고발 여부 등은 전원회의 심의를 통해 확정된다.
이번 전분당 담합 사건은 단순히 하나의 식품 원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설탕, 밀가루, 전분당으로 이어지는 연쇄 담합은 대한민국 식품 산업의 구조적 과점 체질과 반복적 카르텔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4개사가 7년 넘게 시장의 90%를 점유하면서 가격을 합의한 행위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정부와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 역대급 과징금, 임직원 형사 고발이라는 '3종 세트'를 동시에 동원하는 것은 그만큼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공식품 가격이 실질적으로 인하되는지, 담합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만약 가공식품 가격이 부당하게 높다고 느껴진다면, 공정위 신고센터(국번 없이 044-200-4010)나 공정거래위원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담합 의심 사례를 제보할 수 있다. 소비자의 관심과 감시가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