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6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 프리스케이팅 음악 '글래디에이터'의 마지막 선율이 빙판 위에 스며드는 순간, 기하라 류이치(33)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아냈다. 파트너 미우라 리쿠(24)가 그를 끌어안았고, 관중석 전체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프리스케이팅 158.13점, 합계 231.24점. 페어 프리스케이팅 세계 신기록이자, 일본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페어 금메달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하루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리프트 실수가 터지며 73.11점, 5위까지 밀려났다. 선두 독일 하세-볼로딘 조와의 격차는 약 7점. 기하라는 믹스트존에서 "절망적이었다"고 토로했고, 경기장을 떠나는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코치 브루노 마르코트는 단 한마디를 반복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It's not over)." 미우라 역시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아직 프리가 남아 있다. 같이 가는 거다." 이 말이 기하라를 다시 빙판 중앙으로 돌아오게 했다.
이 금메달은 단순한 대역전극이 아니다. 7년 전 스케이트 링크에서 남의 신발 끈을 묶어주던 남자와, 그에게 손을 내민 여자 선수가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다. 부상과 은퇴 위기, 팬데믹과 만성 통증을 뚫고 세계 정상에 선 두 사람의 여정을 지금부터 풀어본다.
기하라 류이치, 은퇴의 문턱에서 신발 끈을 묶다
기하라 류이치는 1992년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스케이트를 시작해 싱글 선수로 성장했고, 2011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10위에 오를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싱글로는 세계 무대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현실에 부딪혔고, 2013년 1월 페어로 전향했다. 첫 파트너는 2012년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 다카하시 나루미였고, 이 조합으로 2014년 소치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결과는 18위, 프리스케이팅에 진출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스자키 미우와 새 팀을 결성했다. 2017-18 전일본선수권을 제패하고 2018년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지만, 결과는 21위로 역시 프리에 진출하지 못했다. 두 번의 올림픽 모두 쇼트 프로그램 단계에서 여정이 끝난 것이다. 2019년 초, 훈련 중 뇌진탕을 당하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 오른쪽 어깨 부상까지 겹쳐 2019 사이타마 세계선수권과 사대륙선수권에서 기권했고, 같은 해 4월 스자키와의 팀이 공식 해체됐다.
기하라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새 파트너도, 확실한 대표팀 자리도 없었다. 해외 훈련비와 생활비 부담은 막막했고, 동년배들이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깊어졌다. 그는 과거 훈련 거점이었던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나토구의 '호와 미나토 스포츠 & 컬처' 링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업무는 대여 스케이트화 접수, 빙상 감시원 역할이었다. 주 3일 정도 시프트에 들어갔고, 어린이 스케이트 교실 참가자들에게 신발 끈을 묶어주고 장비를 정리하는 일상을 보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시설 직원 이이오카 유스케 씨는 나고야TV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카운터에서 나란히 일하던 중 기하라 선수가 문득 말했습니다. '같은 또래가 사회인으로 일하고 있는데, 나는 스케이트 경기밖에 해본 게 없다. 앞으로 어떡하면 좋을까.'" 기하라 본인도 금메달 이후 인터뷰에서 "은퇴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한 시기는 2019년"이라고 밝혔다. "싱글로 돌아가서 끝내려 했다"는 그의 말에는 당시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페어 스케이팅에서 남자 선수는 리프트, 스로우 점프, 트위스트 리프트 등 파트너를 들어 올리는 모든 동작에서 전체 하중을 감당한다. 체중 대비 근력, 코어 안정성, 순간적인 균형 감각이 핵심이며, 만성 허리와 어깨 부상은 선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 구분 | 2014 소치 올림픽 | 2018 평창 올림픽 | 2022 베이징 올림픽 | 2026 밀라노 올림픽 |
|---|---|---|---|---|
| 파트너 | 다카하시 나루미 | 스자키 미우 | 미우라 리쿠 | 미우라 리쿠 |
| 페어 순위 | 18위 | 21위 | 7위 | 1위 (금메달) |
| 프리 진출 여부 | 불가 | 불가 | 진출 | 진출 |
| 당시 세계선수권 최고 성적 | 17위 | 24위 | 2위 | 1위 (2회) |
운명의 트라이아웃, "번개가 친 것 같았다"
2019년 7월 말, 기하라의 인생을 바꾸는 하루가 찾아왔다. 캐나다인 코치 브루노 마르코트가 일본에서 세미나를 진행 중이었고, 공교롭게도 미우라 리쿠와 기하라 류이치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 미우라는 이전 파트너 이치하시 쇼야와 2019년 7월 팀을 해소한 직후였다. 마르코트는 미우라가 12세 때부터 세미나를 통해 알고 있었고, 기하라도 과거 마르코트의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마르코트는 두 사람에게 "한 시간만 함께 타보라"고 제안했다. 핵심 순간은 트위스트 리프트 시도였다. 남자가 여자를 머리 위로 던져 회전시킨 뒤 받는 고난도 기술이다. 기하라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번개가 떨어진 것 같았다(雷が落ちた).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각이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코트 역시 2023년 인사이드 스케이팅 인터뷰에서 "한 시간을 타는 걸 보고 'Oh, My God!'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미우라와 마르코트 두 사람이 함께 기하라를 다시 빙판으로 끌어낸 것이다. 페어의 여자 선수에게는 공중에서 몸을 맡기는 담력이 필수적인데, 마르코트는 미우라에 대해 "겁이 없다(She's not afraid). 정말 배짱이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기하라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재능 있는 스케이터지만, 그 재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상황에 한 번도 놓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트라이아웃 성공 후 불과 2주 만에 두 사람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크빌로 이주했다. 마르코트와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미건 두하멜의 지도 아래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2019년 11월 NHK 트로피에서 국제 대회 데뷔를 치렀고, 그해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유일한 페어 출전 팀으로 국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일본에서 페어 스케이팅은 오랫동안 불모지였다. 올림픽 5회 출전 역사에서 일본 페어 팀이 14위보다 높은 성적을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만큼, 페어는 관심과 투자가 부족한 종목이었다.
기하라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두 번의 올림픽에서 프리에도 올라가지 못한 경험, 뇌진탕과 어깨 부상의 후유증, 그리고 "또 실패하면 진짜 끝"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미우라의 강한 의지와 마르코트의 확신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부상과 팬데믹을 뚫고 쌓아 올린 신뢰의 기록
캐나다로 이주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다. 두 사람은 일본으로 돌아가면 재입국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캐나다에 남았다. 약 1년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훈련을 이어갔다. 3개월간 빙판에 서지 못하는 기간도 있었지만 오프아이스 트레이닝에 집중하며 기본기를 다졌다. 마르코트는 이 시기를 돌아보며 "기술은 늘지 않았지만 잃지도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고 평가했다.
2021년 스톡홀름 세계선수권에서 10위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프리스케이팅까지 완주했다. 기하라 개인으로서는 세계선수권에서 생애 처음 프리에 진출한 순간이었다. 마르코트는 "당시 연습을 보고 다른 코치들과 심판들이 다 물어봤다. '저 팀 누구야?'라고"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 뒤로는 역사가 쏟아졌다. 2021-22 시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은메달을 따며 일본 페어 최초로 그랑프리 시리즈 메달을 획득했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페어 7위를 기록해 일본 페어 최초의 올림픽 입상을 달성했고, 단체전에서는 일본팀의 동메달(이후 은메달로 변경) 획득에 핵심 역할을 했다. 같은 해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 2022-23 시즌에는 스케이트 캐나다, NHK 트로피, 그랑프리 파이널을 모두 석권하며 일본 페어 최초의 그랑프리 이벤트 우승,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23년 사이타마 세계선수권에서는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일본 페어 역사상 전무후무한 '그랜드 슬램'이었다.
하지만 영광의 그늘에는 끊임없는 부상이 있었다. 2022년 여름, 미우라는 아이스쇼 중 왼쪽 어깨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그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스케이트 캐나다까지 불과 5일 전에야 자신감이 돌아올 정도로 회복이 빠듯했다. 2023-24 시즌에는 기하라에게 요추 분리증(Lumbar Spondylosis)이 진단됐다. 만성적인 허리 통증으로 그랑프리 시리즈 두 대회를 기권해야 했고, 전일본선수권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24년 몬트리올 세계선수권에서는 프리 직후 기하라가 과호흡과 급격한 혈당 저하로 쓰러져 긴급 의료 처치를 받았고,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후 운동유발성 천식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미우라의 어깨 문제도 만성이었다. 2025년 12월 전일본선수권 워밍업 중 어깨 탈구가 발생했지만, 스스로 관절을 되돌린 뒤 쇼트 프로그램에 출전해 1위를 차지했다. 다만 프리는 회복에 집중하기 위해 기권했다. 서로의 몸이 무너질 때 서로가 붙잡아 주며 버텨 온 팀이었다.
페어 남자 선수의 만성 허리 부상은 리프트와 스로우 동작에서 파트너의 전체 체중을 반복적으로 감당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기하라의 요추 분리증은 척추 뼈의 피로 골절로, 고강도 훈련을 지속하는 한 완치가 어려운 부상이다. 통증 주사를 맞으며 시즌을 소화하는 경우가 많으며, 연습 후에는 얼음찜질로 허리를 관리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 시즌 | 주요 부상 및 건강 이슈 | 주요 성과 |
|---|---|---|
| 2018-19 | 기하라 뇌진탕 및 우측 어깨 부상, 파트너 해체 | 세계선수권 기권 |
| 2022 여름 | 미우라 왼쪽 어깨 인대 파열 | 스케이트 캐나다 우승 (부상 복귀 직후) |
| 2023-24 | 기하라 요추 분리증 진단 | GP 2대회 기권 후 세계선수권 은메달 |
| 2024 몬트리올 | 기하라 과호흡 및 혈당 저하로 응급 처치 | 운동유발성 천식 진단 |
| 2025년 12월 | 미우라 어깨 탈구 (워밍업 중) | SP 1위 후 프리 기권, 올림픽 대표 확정 |
밀라노 올림픽, 절망의 5위에서 세계 신기록 금메달까지
2026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에서 미우라-기하라 조는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혔다. 대회 직전 단체전에서도 쇼트(82.84점)와 프리(155.55점) 모두 개인 최고점을 경신하며 일본팀의 은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자신감은 최고조였다.
그러나 2월 15일 페어 쇼트 프로그램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7개 요소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그룹 5 악셀 라소 리프트에서 기하라가 미우라를 내려놓는 타이밍이 어긋났다. 두 사람의 호흡이 미세하게 맞지 않은 탓이었다. 해당 리프트는 레벨 2에 마이너스 GOE(실행 점수)를 받았고, 약 5점이 날아갔다. 최종 점수는 73.11점으로, 2024년 11월 이후 12개 대회 중 최저 점수였다. 순위는 5위, 1위 독일 하세-볼로딘 조와 6.90점 차이였다.
경기 직후 기하라는 거의 말을 잇지 못했다. "작은 실수가 아니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숙소로 돌아가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공식 연습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침부터 링크에 도착해서, 연습 중에도, 워밍업 때도 계속 울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고 그는 프리 이후 밝혔다.
이때 미우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평소에는 류이치가 더 강한 쪽이다. 이번에는 리쿠가 정말 나를 지탱해줬다"고 기하라가 말했다. 미우라는 이렇게 회상했다. "류이치의 좌절감이 정말 컸기 때문에, 나는 그를 지지하는 역할로 전환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 프리가 남아 있었고, 단체전에서 150점대를 받았으니 실수 없이 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계속 생각했다." 코치 마르코트도 2018 평창 올림픽에서 4위에서 역전 금메달을 차지한 사브첸코-마소 조(독일)의 사례를 상기시키며 "나는 절대로, 절대로 믿음을 잃지 않았다"고 두 사람을 독려했다.
2월 16일 프리스케이팅. 미우라-기하라 조는 준결승 그룹의 마지막 순서로 빙판에 올랐다. 음악은 '글래디에이터 II'와 '글래디에이터'의 OST로, 해리 그렉슨 윌리엄스 작곡에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Nelle tue mani(Now We Are Free)'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오프닝 트리플 트위스트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사이드 바이 사이드 트리플 토루프-더블 악셀-더블 악셀 콤비네이션도 깔끔하게 착지했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 전날 실수가 난 바로 그 라소 리프트를 흠잡을 데 없이 완성했다. 11개 요소 전체에서 마이너스 GOE가 단 하나도 없었고, 여러 요소에서 최고 등급인 +5를 받았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기하라는 주저앉아 울었고, 미우라와 오랫동안 포옹했다. 점수가 발표되자 키스 앤 크라이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프리스케이팅 158.13점은 2022년 유럽선수권에서 미시나-갈랴모프 조가 세운 기존 세계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합계 231.24점으로 최종 1위, 2위 조지아 메텔키나-베룰라바 조(221.75점)에 약 10점 차를 벌렸다.
쇼트에서 5위까지 밀린 뒤 프리에서 1위로 역전하는 것은 올림픽 페어 역사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2018 평창에서 사브첸코-마소가 4위에서 역전 우승한 것이 가장 유사한 선례인데, 당시 점수 차는 약 6점이었다. 미우라-기하라의 7점 차 역전은 그보다 더 큰 격차를 뒤집은 것으로, 프리에서의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준다.
| 순위 | 선수 (국적) | SP 점수 | FS 점수 | 합계 |
|---|---|---|---|---|
| 1위 (금) | 미우라 리쿠-기하라 류이치 (일본) | 73.11 | 158.13 (세계 신기록) | 231.24 |
| 2위 (은) | 메텔키나-베룰라바 (조지아) | - | - | 221.75 |
| 3위 (동) | 하세-볼로딘 (독일) | - | - | 219.09 |
| 4위 | 파블로바-스비아첸코 (헝가리) | - | - | 215.26 |
| 5위 | 수이원징-한총 (중국, 전 올림픽 챔피언) | - | - | 208.64 |
신발 끈을 묶던 손이 금메달을 들어 올리기까지
기하라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역전승'이라서가 아니다. 이 금메달의 무게를 이해하려면 2019년의 나고야 링크로 돌아가야 한다. 대여 스케이트화 카운터에서 일하며 "나는 스케이트밖에 해본 게 없다"고 불안해하던 33세의 남자가, 같은 빙판 위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사람이었다. 미우라 리쿠라는 파트너, 브루노 마르코트라는 코치, 그리고 두 사람을 지원해 온 키노시타 그룹과 일본 스케이트 연맹. 기하라는 금메달 직후 "정말 감사밖에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제 쇼트 이후 역전이 가능하다고 말해준 모든 분들, 코치님, 그 격려의 말들이 내 마음가짐을 앞으로 향하게 해줬다. 이곳이 우리가 싸우는 자리다. 이 올림픽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끝까지 공격하겠다고 다짐했다."
미우라도 한층 성장한 자신을 드러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강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쌓아온 시간과 매 대회마다 그가 나를 지지해준 덕분에, 이번 대회에서 강해질 수 있었다." 시상대에서 기하라가 미우라를 번쩍 들어 올려 시상대에 올려주고 내려줄 때, 팬들은 '기하라 운송(木原運送)'이라며 열광했다. 두 사람이 빙판 위에서뿐 아니라 빙판 밖에서도 서로를 들어 올리는 팀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일본 피겨 스케이팅은 하뉴 유즈루와 아사다 마오 이후 싱글 종목의 강국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페어에서는 올림픽 5회 출전 역사에서 14위 이상의 성적을 낸 적이 없었다. 미우라-기하라 조가 이 벽을 허물었다. 2022년 7위(일본 페어 최초 올림픽 입상), 2023년과 2025년 세계 챔피언, 그리고 2026년 올림픽 금메달. 마르코트 코치의 말처럼,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최고 버전이 되는 것"을 매일 추구해 온 결과였다.
미우라-기하라 조의 이번 올림픽 성과를 숫자로 정리하면 이렇다. 단체전 은메달(쇼트 82.84점, 프리 155.55점 모두 개인 최고), 페어 개인전 금메달(프리 158.13점 세계 신기록, 합계 231.24점 개인 최고). 2022 베이징부터 2026 밀라노까지 통산 올림픽 메달 3개(금 1, 은 2)를 수확했다.
2019년, 빙판 한쪽에서 남의 신발 끈을 묶어주던 기하라 류이치. 그리고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야"라고 손을 내밀어 준 미우라 리쿠. 서로가 서로의 마지막 기회이자 첫 번째 믿음이 되어 준 7년의 시간이, 밀라노의 빙판 위에서 금빛으로 빛났다. 이제 일본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에는 하뉴 유즈루의 이름 옆에 '리쿠류(りくりゅう)'라는 이름이 나란히 새겨졌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져갈 것은 명확하다. 포기할 이유가 백 가지라도, 한 사람의 믿음이 그 모든 이유를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당신 곁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손을 놓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