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다. 2025년 기준 이주 배경 인구가 전체의 5%를 넘어섰고, 매년 1만 명 이상이 한국 국적을 새로 취득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방송, 스포츠, 정치,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한국인'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외국 출신 유명인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국적만 바꾼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어떤 이는 한국식 성씨의 시조가 되었고, 어떤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귀화인 국회의원이 되었다. 또 어떤 이는 한국 축구와 농구의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필리핀, 방글라데시, 러시아 등 11개국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16명의 유명인을 한 명 한 명 깊이 있게 소개한다. 각각의 귀화 배경,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현재까지의 활동 이력을 통해 진정한 '신 한국인'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방송과 교육 분야에서 활약하는 귀화 유명인 6인
방송과 교육계에는 한국 사회에 일찍부터 뿌리를 내리고 오랜 기간 활동한 귀화인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한국 대중에게 '외국인'이 아닌 '우리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어 왔다.
로버트 할리(하일) - 미국 출신, 영도 하씨의 시조
로버트 브래들리 할리(Robert Bradley Holley)는 1960년 미국 유타주 프로보에서 태어났다. 1979년 몰몬교 선교사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그는 한국의 정(情)에 깊이 매료되었다. 한국인 아내 명현숙과 결혼한 뒤 1997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며 '하일(河一)'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이때 새로 만든 성씨가 바로 영도 하씨(影島 河氏)로, 하일 본인이 시조이며 자녀 3명과 함께 총 4명이 이 성씨에 등록되어 있다. 1994년부터 KBS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1세대 귀화 방송인으로 자리매김했고, 미국 변호사 자격도 보유하고 있다.
** 한국에 귀화할 때 기존에 없는 새로운 성씨를 만들 수 있다. 로버트 할리의 '영도 하씨'처럼 본관과 성을 새로 창설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하며, 이 경우 귀화인 본인이 해당 성씨의 시조가 된다.
이다도시 - 프랑스 출신, 1세대 귀화 방송인 겸 숙명여대 교수
이다 노엘 다니엘 도시(Ida Noëlle Danielle Daussy)는 1969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났다. 1992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학생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1993년 결혼과 함께 1996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명은 서혜나다. '외국인 문익점'이라는 별명답게 외국인 방송 출연의 물꼬를 튼 장본인이며, '울랄라'와 '임신하셨어요?' 등의 유행어로 CF퀸 시절을 보냈다. 2012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전임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D학점을 많이 준다 하여 'D다도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인요한 - 미국 출신, 대한민국 특별귀화 1호
인요한(印曜翰, John Alderman Linton)은 195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구한말 선교사 유진 벨(1868 - 1925)의 외증손으로, 4대에 걸쳐 100년 넘게 한국과 인연을 이어온 가문 출신이다. 1987년 서양인 최초로 대한민국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고,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91년부터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1993년에는 한국형 구급차(엠뷸런스)를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2년 3월 대한민국 특별귀화 1호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미국 국적을 유지한 채 복수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정치에도 입문하여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 구분 | 로버트 할리 | 이다도시 | 인요한 |
|---|---|---|---|
| 출신 국가 | 미국 | 프랑스 | 미국 |
| 귀화 연도 | 1997년 | 1996년 | 2012년 |
| 귀화 유형 | 일반귀화 | 일반귀화 | 특별귀화 |
| 주요 직업 | 방송인, 변호사 | 대학교수, 방송인 | 의사, 정치인 |
| 복수국적 | 불가(미국 국적 포기) | 불가 | 가능(미국 국적 유지) |
이참 - 독일 출신, 한국관광공사 역대 최장수 사장
이참(李參, Bernhard Quandt)은 1954년 독일 바트크로이츠나흐에서 태어났다. 1978년부터 15년간 주한 독일 문화원 강사로 활동하며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고, 1986년 325번째 귀화인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명은 이한우(李韓佑)였으나 이후 이참으로 변경했다. 2007년 저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답답한 나라 한국'을 출간했고, 2009년 귀화인 최초로 공기업 수장인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되어 역대 최장수 사장을 지냈다.
방대한 - 방글라데시 출신, 전국노래자랑 외국인 최초 대상 수상자
방대한은 1975년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 왔다.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따 '대한'으로 짓고 앞에 '방글라데시'의 '방'을 붙여 방대한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2009년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외국인 최초로 대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가 되었고, 이후 영화 '방가?방가!'에 조연으로 캐스팅되었다. KBS '1박 2일'에도 출연하는 등 방송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0년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다.
일리야 벨랴코프 - 러시아 출신, 비정상회담 러시아 대표
일리야 벨랴코프(Илья Беляков)는 198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러시아인 아버지는 직업군인 출신이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2003년 어학연수로 한국에 처음 왔으며,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14년 JTBC '비정상회담'에 러시아 대표로 출연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고, 2016년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했다. 현재 의료통역사 겸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2022년 수원대학교 외국어학부 러시아어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
** 일리야처럼 러시아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한 경우, 러시아 법률상 러시아 국적 회복이 매우 어렵다. 일반귀화를 선택할 때는 원래 국적 포기의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문화와 예술 분야의 귀화 유명인 4인
연예, 음악, 요리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귀화인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하희라 - 대만(중화민국) 출신, 배우 최수종의 아내
하희라(夏希羅)는 1969년 서울 성북구에서 대만계 화교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국적은 대만(중화민국)이었다. 1988년 배우로 데뷔한 뒤 다수의 드라마와 뮤지컬에서 활약했으나, 대만 국적 때문에 해외 로케이션 시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93년 동료 배우 최수종과 결혼하면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현재까지도 '잉꼬부부'의 대명사로 불리며 꾸준히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현미 - 대만(중화민국) 출신, '비 내리는 영동교' 트로트 여왕
주현미는 1961년 광주에서 중국 산둥성 출신 한의사 아버지(주금부)와 전북 김제 출신 한국인 어머니(정옥선) 사이에서 태어난 화교 2.5세다. 원래 국적은 대만(중화민국)이었다. 한성화교학교를 졸업한 뒤 1979년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에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입학하여 약사 면허를 취득했다. 약국을 운영하다 1985년 가수로 데뷔했고,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사람' 등의 히트곡으로 트로트 여왕 자리에 올랐다. 이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여 현재는 한국 단일 국적자다.
이연복 - 대만(중화민국) 출신, 대한민국 중식 대가
이연복(李連福)은 1959년 서울에서 중화민국 국적의 화교 집안에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중국 산둥성 출신이다. 13세에 요리계에 입문했고 17세에 한국 최초 호텔 중식당인 명동 사보이 호텔에 입사했다. 이후 대만에서 유학하며 실력을 갈고닦았고, 1998년 서울 연희동에 중식 레스토랑 '목란'을 개업했다. 원래 대만 국적이었으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여 귀화했다.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연복 셰프'라는 이름은 한국 중식의 상징이 되었다.
** 하희라, 주현미, 이연복 셰프는 모두 한국 화교 출신으로 원래 대만(중화민국) 국적이었다. 한국 화교는 대부분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과거 중화민국과의 외교관계로 인해 대만 국적을 보유했다가 이후 한국으로 귀화한 사례가 많다.
강남(나메카와 야스오) - 일본 출신, 3수 끝에 귀화 합격
강남(본명: 나메카와 야스오)은 1987년 일본 도쿄 에도가와구에서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일혼혈이다. 2011년 힙합 그룹 M.I.B를 통해 한국 데뷔 후 유쾌한 입담으로 각종 예능에서 활약했다. 2018년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와 결혼한 뒤 귀화 의지를 밝혔으나, 귀화 시험에 두 차례 낙방하며 화제가 됐다. 2022년 2월 3수 만에 귀화 시험에 합격하여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과 일본은 복수국적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 국적을 포기한 완전한 한국 국적자가 되었다.
| 구분 | 하희라 | 주현미 | 이연복 | 강남 |
|---|---|---|---|---|
| 출신 국가 | 대만 | 대만 | 대만 | 일본 |
| 귀화 연도 | 1993년 | 비공개 | 비공개 | 2022년 |
| 귀화 계기 | 배우 최수종과 결혼 | 한국 정착 | 한국 정착 | 아내 이상화와 결혼 |
| 주요 직업 | 배우 | 가수, 약사 | 셰프 | 가수, 방송인 |
| 특이사항 | 화교 출신 | 약사 면허 보유 | 목란 오너셰프 | 3수 만에 시험 합격 |
**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복수국적이 인정되지 않는다. 강남의 사례처럼 한쪽 국적을 취득하면 반드시 다른 쪽 국적을 포기해야 하므로, 귀화 결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스포츠 분야의 귀화 선수 4인
스포츠 분야에서는 국가대표 선발을 위해 전략적으로 귀화한 선수들과, 한국 생활에 뿌리를 내려 자연스럽게 귀화한 선수들이 모두 존재한다.
전태풍 - 미국 출신, 귀화 농구 선수 1세대
전태풍(田颱風, Tony Akins)은 1980년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에서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한 실력파였다. 한국 프로농구(KBL) 진출을 위해 2009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귀화 후 전주 KCC 이지스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으며, KBL 통산 395경기에서 평균 11.2점, 4.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로 성장했다.
라건아 - 미국 출신, 특별귀화 농구 센터
라건아(본명: 리카르도 라틀리프, Ricardo Ratliffe)는 1989년 미국 버지니아주 햄프턴에서 태어났다. 2012년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KBL 데뷔 후 리그를 지배하는 센터로 군림했다. 2018년 1월 체육 분야 우수 인재로 특별귀화를 허가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미국 국적도 유지하는 복수국적자다. 성은 라틀리프의 '라'를 따고 '굳셀 건(建)'과 '아이 아(兒)'를 더해 '용인 라씨'의 시조가 되었다.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나, 2024년부터 KBL 내부 규정상 외국인 선수로 재분류되는 등 논란을 겪기도 했다.
신의손(사리체프) - 타지키스탄 출신, K리그 전설의 골키퍼
신의손(申宜孫, 본명: 발레리 콘스탄치노비치 사리체프)은 1960년 소련(현 타지키스탄)에서 태어났다. 1992년 일화 천마에 입단하며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었고, K리그에서 252경기에 출전하며 278실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K리그 연속경기 무실점(8경기)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2000년 3월 K리그 최초의 귀화 선수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은퇴 후에도 한국에 정착하여 현재 천안공업고등학교 골키퍼 코치로 활동 중이다.
이싸빅 - 크로아티아 출신, K리그 수비의 달인
이싸빅(李싸빅, 본명: 야센코 사비토비치)은 1973년 유고슬라비아(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투즐라에서 태어난 크로아티아 국적 선수였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예선에서 크로아티아 대표로 뛰었을 만큼 실력파였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K리그 데뷔 후 탁월한 대인 방어 능력과 제공권 장악력을 인정받았다. 2004년 귀화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신의손과 이성남에 이어 K리그 세 번째 귀화 선수가 되었다. 성남 일화의 K리그 3연패에 핵심 수비수로 기여했고, 이후 수원, 전남 등을 거치며 한국 축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 스포츠 귀화 선수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국가대표 선발 등 전략적 목적의 귀화(전태풍, 라건아)이고, 둘째는 장기간 한국에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정착한 귀화(신의손, 이싸빅)다. 전자는 주로 빠른 과정을 거치고, 후자는 5년 이상의 거주 요건을 충족한 일반귀화 사례가 많다.
정치와 공직 분야에서 활약한 귀화인 2인
한국 사회에서 귀화인이 정치와 공직 분야까지 진출한 사례는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자스민 - 필리핀 출신, 대한민국 최초 귀화인 국회의원
이자스민(본명: 자스민 바쿠르나이 이 비야누에바)은 1977년 필리핀에서 태어났다. 1995년 한국인 항해사 남편과 결혼하여 한국에 입국했고, 1998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다문화 가정 지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문화 전문가로 인지도를 쌓았다.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에 입성하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귀화인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다문화 정책 입법과 인식 개선에 주력했으며, 제21대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이자스민의 국회 진출은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찬반 논란이 뜨거웠지만, 다문화 가정 250만 시대에 이주민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했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 귀화인의 피선거권은 귀화 후 일정 기간이 경과해야 부여된다. 국회의원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지며, 귀화인도 국적 취득 후 동일한 자격을 갖는다. 다만 대통령 피선거권은 귀화인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이참(독일 출신)과 이자스민(필리핀 출신)의 공직 진출은 귀화인도 대한민국 사회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이참은 2009년 귀화인 최초로 공기업 사장(한국관광공사)에 올랐고, 이자스민은 2012년 귀화인 최초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 구분 | 이자스민 | 이참 |
|---|---|---|
| 출신 국가 | 필리핀 | 독일 |
| 귀화 연도 | 1998년 | 1986년 |
| 공직 이력 | 19대, 21대 국회의원 | 한국관광공사 사장 |
| 귀화 계기 | 결혼이민 | 한국 정착 |
| 역사적 의미 | 최초 귀화인 국회의원 | 최초 귀화인 공기업 수장 |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 16명의 유명인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모두 한국이라는 공통된 무대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1986년 325번째 귀화인이었던 이참부터 2022년 3수 만에 귀화에 성공한 강남까지, 약 36년에 걸친 귀화인들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2025년 기준 연간 귀화자 수가 1만 1,000명을 넘어선 지금, 이들의 존재는 더 이상 예외적이지 않다. 이주 배경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선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의 정의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적의 기원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대한 애정과 기여라는 사실을, 이 16인의 삶이 증명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다면, 이 글에 소개된 인물들의 저서나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인요한 박사의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이참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답답한 나라 한국', 일리야 벨랴코프의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등은 귀화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