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가끔 한 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쏟아붓는 실수를 저지른다. 1958년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태어난 에릭 아서 하이든(Eric Arthur Heiden)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전무후무한 올림픽 단일 대회 5관왕, 은퇴 직후 종목을 바꿔 미국 프로 사이클 챔피언, 그리고 명문 스탠퍼드 의대를 졸업한 정형외과 전문의. 이 모든 타이틀이 한 사람의 이력서에 적혀 있다.
보통 사람은 이 중 하나만 이뤄도 대단한 인생이라고 한다. 하이든은 세 개를 전부 해냈다. 그것도 각 분야에서 최정상 수준으로.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크로스컨트리의 요하네스 클레보가 46년 만에 단일 대회 5관왕 기록에 도전하면서, 하이든의 이름이 다시 한번 전 세계에 회자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재능 몰빵'의 아이콘 에릭 하이든의 스케이팅, 사이클, 의학이라는 세 번의 인생을 구체적 기록과 팩트로 파헤친다.
첫 번째 인생: 빙판 위의 절대자, 올림픽 5관왕
에릭 하이든의 스피드스케이팅 커리어는 말 그대로 '정복'이었다. 그는 500m 스프린트부터 10,000m 장거리까지 모든 종목을 지배한 유일무이한 선수다.
세계를 장악한 10대 시절
하이든은 1976년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에 17세의 나이로 처음 출전해 1,500m 7위, 5,000m 19위를 기록했다. 아직 무명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인 1977년, 그는 미국 남자 선수로서 86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종합 선수권 대회(World Allround Championships)를 제패했다. 같은 해 세계 주니어 선수권과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까지 석권하며 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세 개의 세계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이 기세는 1978년, 1979년에도 이어져 세계 종합 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올림피디아(Olympedia)에 따르면 하이든은 선수 생활 동안 총 9개의 세계 기록을 수립했는데, 1,000m에서만 3회, 3,000m에서 2회, 1,500m·10,000m·스프린트 종합에서 각 1회씩이었다.
하이든의 신체 스펙은 경이로웠다. 키 185cm, 체중 84kg의 체격에 허벅지 둘레가 27인치(약 69cm)로 허리둘레 32인치(약 81cm)에 육박했다. ESPN에 따르면 그는 일반 바지를 입지 못해 허리 38인치 바지를 사서 허리를 줄여 입어야 했다. 매일 200회 이상의 스쿼트, 20km 달리기, 160km 사이클링을 병행한 결과였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9일간의 전설
1980년 2월 15일부터 23일까지, 하이든은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개 종목에 모두 출전해 전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5개 종목 모두에서 올림픽 기록을 경신했고, 마지막 10,000m에서는 세계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 종목 | 기록 | 비고 |
|---|---|---|
| 500m | 38.03초 | 올림픽 신기록, 2위와 0.2초 차 |
| 5,000m | 7분 02초 29 | 올림픽 신기록, 2위와 1.5초 차 |
| 1,000m | 1분 15초 18 | 올림픽 신기록, 2위와 1.5초 차 |
| 1,500m | 1분 55초 44 | 올림픽 신기록, 빙판 홈에 걸려 자세 흐트러진 상태에서 우승 |
| 10,000m | 14분 28초 13 | 세계 신기록, 2위와 6초 이상 차 |
특히 10,000m는 전날 밤 미국 아이스하키팀의 '빙판 위의 기적(Miracle on Ice)' 승리를 지켜보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코치에게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늦잠을 자고도 세계 기록을 세운 것이다.
하이든의 단일 대회 개인 종목 5관왕 기록은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대회에서 클레보가 6관왕(개인 4개 + 팀 2개)을 달성했지만, 개인 종목만으로 5관왕을 기록한 것은 여전히 하이든이 유일하다.
하이든의 여동생 베스 하이든(Beth Heiden) 역시 같은 대회 3,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남매가 합산 6개의 메달을 가져간 셈이다. 베스도 나중에 사이클로 전향하여 1980년 세계 여자 도로 사이클 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재능 몰빵은 가문 전체의 특성이었던 모양이다.
두 번째 인생: 빙판에서 아스팔트로, 프로 사이클리스트
올림픽 5관왕 이후 하이든이 선택한 다음 무대는 빙판이 아닌 도로였다. 그는 스케이팅에서 쌓은 경이적인 하체 파워를 자전거 페달에 실었다.
7-Eleven 팀과 미국 챔피언십
하이든은 올림픽 직후 잠시 노르웨이에서 아이스하키를 하기도 했지만, 곧 사이클로 완전히 전향했다. 미국 최초의 유럽 프로 사이클 팀인 7-Eleven 팀에 합류한 그는 1980년부터 1986년까지 7시즌 동안 프로 사이클 선수로 활동했다.
그리고 1985년 6월 23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회 미국 프로 사이클 도로 챔피언십(US Professional Cycling Championship)에서 6시간 29분 39초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미국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빙판 위의 전설이 아스팔트 위에서도 정상에 선 순간이었다.
| 비교 항목 | 스피드스케이팅 | 사이클 |
|---|---|---|
| 활동 기간 | 1976 - 1980년 | 1980 - 1986년 |
| 최고 성적 | 올림픽 5관왕 + 세계선수권 3연패 | 미국 프로 챔피언십 우승 |
| 대표 대회 | 1980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 | 1986 투르 드 프랑스 |
| 소속팀 | 미국 국가대표 | 7-Eleven 팀 |
| 핵심 무기 | 허벅지 27인치의 폭발적 파워 | 동일한 하체 근력 + 지구력 |
투르 드 프랑스 완주
1986년, 하이든은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에 7-Eleven 팀 소속으로 출전했다. 이 대회는 그 유명한 그렉 르몽과 베르나르 이노의 라이벌 대결로 유명한 해였다. 하이든은 대회 도중 낙차 사고를 당했음에도 끝까지 레이스를 이어갔다. 최종 순위는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자전거 대회를 완주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초인적 체력을 증명한다.
하이든의 사이클 업적은 1999년 미국 자전거 명예의 전당(US Bicycling Hall of Fame) 헌액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올림픽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과 자전거 명예의 전당에 모두 이름을 올린 극소수의 인물이다.
세 번째 인생: 닥터 하이든, 정형외과 전문의
두 가지 스포츠에서 정상에 오른 것만으로도 전설인데, 하이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잭 하이든(Jack Heiden)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역시 매디슨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정형외과 의사였다.
스탠퍼드 의대에서 파크시티까지
하이든은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이학(생물학) 학부를 마친 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1991년 의학박사(M.D.)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UC 데이비스에서 정형외과 레지던트 수련을 1996년에 마치고, 앨라배마주 버밍엄의 스포츠의학 클리닉에서 1년간 펠로우십을 거쳤다.
현재 하이든은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아내 카렌과 함께 하이든 정형외과(Heiden Orthopedics)를 운영하며 무릎과 어깨 부상 전문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이든은 의사로서도 스포츠와의 연결 고리를 놓지 않았다. NBA 새크라멘토 킹스와 WNBA 새크라멘토 모나크스의 팀 닥터를 수년간 역임했고,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과 사이클 대표팀의 팀 닥터로도 활동했다. 또한 사이클 프로팀 BMC 레이싱(BMC Racing)의 팀 의사로서 투르 드 프랑스 현장에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선수에서 의사로: 타임라인
하이든의 인생 타임라인을 정리하면, 한 사람의 이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 1958년 - 위스콘신주 매디슨 출생
- 1976년 - 인스브루크 올림픽 첫 출전 (17세)
- 1977 - 1979년 - 세계 종합 선수권 3연패,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우승
- 1980년 2월 -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 5관왕 (올림픽 기록 4개 + 세계 기록 1개)
- 1980 - 1986년 - 프로 사이클 선수 활동 (7-Eleven 팀)
- 1985년 - 미국 프로 사이클 챔피언십 우승
- 1986년 - 투르 드 프랑스 출전
- 1991년 - 스탠퍼드 의대 졸업 (M.D.)
- 1996년 - UC 데이비스 정형외과 레지던트 수료
- 1999년 - 미국 자전거 명예의 전당 헌액
- 현재 - 파크시티 정형외과 개업의, 스포츠 팀 닥터
간혹 하이든이 '운동만 잘하고 공부는 대충 한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는데, 스탠퍼드 의대는 미국 의대 중 최상위권(U.S. News 기준 상위 5위권)으로 입학과 졸업 모두 극도로 까다롭다. 정형외과 레지던트 역시 미국 의료계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전공 중 하나다.
46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는 기록의 의미
에릭 하이든의 1980년 올림픽 5관왕이 왜 재현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인지 이해하려면, 스피드스케이팅의 종목 특성을 알아야 한다. 500m는 순간 폭발력이 핵심인 스프린트 종목이고, 10,000m는 30바퀴 가까이 돌아야 하는 극한의 지구력 종목이다. 100m 육상과 마라톤을 동시에 잘하는 선수가 없듯이, 스케이팅에서도 단거리와 장거리를 모두 지배하는 선수는 사실상 나올 수 없다.
하이든은 이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유일한 선수다. 그것도 모든 종목에서 올림픽 기록을 경신하면서. 현대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선수들의 전문화가 극도로 심화되어 단거리 전문, 중거리 전문, 장거리 전문으로 완전히 나뉘어 있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대회에서 미국의 조던 스톨츠(Jordan Stolz)가 500m, 1,000m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획득하며 하이든의 뒤를 잇는 미국 스케이팅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5개 종목 석권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에릭 하이든이 진정 특별한 이유는 한 분야에서의 초인적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전혀 다른 영역으로 도전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올림픽 금메달 5개를 목에 건 21세 청년은 환호하는 대중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메달? 그걸로 뭘 할 수 있겠어요(Heck, gold medals, what can you do with them)?" 그리고 그는 자전거를 타러 갔고, 의대에 갔고, 수술실에 섰다.
하이든의 삶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재능은 한 곳에서만 빛나야 한다는 법이 없다는 것. 지금 무언가를 잘하고 있다면, 그 역량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통할 수 있다. 다음 도전을 망설이고 있다면, 에릭 하이든의 이력서를 떠올려 보자. 빙판 위의 전설은 아스팔트 위에서도, 수술실 안에서도 전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