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몸에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유영하는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천사 같다고 해서 '유빙의 천사', '바다의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생물이 있습니다. 바로 클리오네(Clione limacina)입니다. 일본에서는 매년 유빙 시즌이 되면 생선 가게와 슈퍼마켓 선어 코너에서 병에 담긴 클리오네를 관상용으로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2026년 2월에도 홋카이도 아바시리산 클리오네가 병당 2,000엔에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천사 같은 생물에게는 정반대의 별명도 있습니다. 바로 '바다의 악마'. 먹이를 먹는 순간, 머리가 두 쪽으로 쩍 갈라지면서 6개의 촉수가 뻗어 나오는 모습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 극적인 반전이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SNS에서 '동심 파괴 영상'으로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클리오네의 생물학적 정체부터 충격적인 포식 메커니즘, 사육 가능 여부, 그리고 이 생물을 둘러싼 흥미로운 사실들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클리오네의 정체 - 달팽이도 고둥도 아닌 것 같은 '고둥'
클리오네는 언뜻 보면 해파리나 플랑크톤 같지만, 분류학적으로는 연체동물문 복족강 무각익족류 무각거북고둥과에 속하는 고둥의 일종입니다. 한국어 정식 명칭은 '무각거북고둥', 학명은 Clione limacina이며, 1676년 프리드리히 마르텐스가 최초로 발견하고 1774년 피프스 남작이 학명을 기재했습니다.
군소나 갯민숭달팽이와 같은 바다달팽이류의 친척인데, 태어날 때는 껍질을 가지고 있다가 성장하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내장 기관을 제외하면 몸 전체가 투명하고, 양옆에 달린 날개 모양의 익족(pteropod)을 파닥여서 헤엄칩니다. 이 유영 모습이 천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하여 영어로도 'Sea Angel'이라 불립니다.
| 항목 | 상세 정보 |
|---|---|
| 학명 | Clione limacina (Phipps, 1774) |
| 한국명 | 무각거북고둥 |
| 영어명 | Sea Angel, Naked Sea Butterfly |
| 분류 | 연체동물문 > 복족강 > 무각익족류 > 무각거북고둥과 |
| 크기 | 보통 1 - 3cm (최대 8.5cm) |
| 수명 | 2 - 3년 |
| 서식지 | 북극해, 남극해, 베링해, 오호츠크해 등 수온 0도 내외 극지 수역 |
| 서식 수심 | 수면 - 약 500m |
| 생식 | 자웅동체, 6개월에 1회 번식, 30 - 40개 알 산란 |
클리오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뮤즈 중 하나인 '클레이오(Kleio, 역사의 뮤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클리오네를 발견하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전설이 있어, 중국과 일본의 부유층이 관상용으로 키우기도 합니다.
천사에서 악마로 - 충격적인 포식 메커니즘
클리오네가 '바다의 악마'라 불리는 이유는 전적으로 먹이를 먹는 방식 때문입니다. 평소의 천사 같은 모습과는 상상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변신이 일어납니다.
버컬콘(Buccal Cones) - 머리 속에 숨겨진 6개의 촉수
클리오네의 머리 부분에는 평소 완전히 접혀서 숨겨져 있는 버컬콘(Buccal Cones)이라 불리는 6개의 촉수가 있습니다. 이 촉수는 3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먹이를 감지하는 순간 머리가 좌우로 쩍 갈라지면서 한꺼번에 뻗어 나옵니다.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의 설명에 따르면, 먹잇감에 접촉하는 순간 손가락 모양의 촉수가 머리에서 튀어나와 먹이를 붙잡고, 갈고리 모양의 부속기관으로 먹이를 껍질에서 완전히 빼내어 삼킵니다. 이 과정은 2분에서 최대 45분까지 소요됩니다.
유일한 먹이 - 유각거북고둥(미진우키마이마이)
더 놀라운 점은 클리오네의 극단적인 편식 습성입니다. Clione limacina 종은 오직 리마키나(Limacina) 속의 유각거북고둥만 먹습니다. 같은 익족류이면서 껍질이 있는 이 작은 고둥이 거의 유일한 먹잇감입니다. 버컬콘으로 먹이를 붙잡은 뒤, 껍질 속의 몸체를 통째로 끄집어내서 소화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클리오네는 포획한 먹이의 영양분을 거의 100%에 가까운 효율로 동화(同化)합니다. 이 극도로 높은 영양 흡수 효율 덕분에 1년에 딱 1 - 2회만 먹어도 생존이 가능한 것입니다.
| 구분 | 평소 모습 (천사) | 포식 모습 (악마) |
|---|---|---|
| 머리 상태 | 매끈한 반투명 | 좌우로 갈라짐 |
| 촉수 | 완전히 숨겨져 보이지 않음 | 6개 버컬콘이 동시에 돌출 |
| 행동 | 날개를 파닥이며 천천히 유영 | 먹이를 향해 돌진, 촉수로 포획 |
| 소요 시간 | - | 2분 - 45분 |
| 빈도 | - | 연 1 - 2회 |
| 별명 | 유빙의 천사, Sea Angel | 바다의 악마 |
클리오네가 먹이를 먹는 영상을 처음 보면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KBS 스펀지(2006년)에서도 이 장면을 방영해 큰 화제가 되었으며,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라는 밈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일본 오호츠크 유빙관에서는 실제로 밤에 클리오네가 자발적으로 버컬콘을 꺼내는 장면이 포착되어 '공포 영상'으로 게시된 적도 있습니다.
클리오네가 리마키나를 만나지 못하는 기간에는 간혹 단각류(amphipod)나 요각류(copepod) 같은 다른 먹이를 섭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며, 기본적으로 클리오네는 리마키나에 대한 절대적인 편식자입니다.
1년 굶어도 살아남는 경이로운 생존 능력
클리오네의 또 다른 놀라운 특성은 기아 상태에 대한 극단적인 내성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클리오네는 먹이 없이 최대 356일(약 1년)까지 생존한 실험 기록이 있습니다. 굶주림 상태에서 클리오네는 체내에 축적된 지질(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심지어 생식기관 등 불필요한 체내 구조물까지 분해하여 에너지로 전환합니다.
여름철에 다량의 지질을 체내에 축적하는 능력이 이 장기 생존의 열쇠입니다. 평소 몸 크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지질 방울(lipid droplet)이 에너지 저장고 역할을 하며, 먹이가 없는 겨울을 버텨내는 생존 전략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다만 1년간의 절식 후에는 체장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지질 저장량도 거의 고갈되므로, 이것이 자연 상태에서의 일반적인 패턴은 아닙니다. 보통은 반년에서 1년 사이에 먹이를 한 번 포획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클리오네가 분비하는 특정 화학물질은 대부분의 포식자를 쫓아낼 만큼 불쾌한 맛을 냅니다. 남극 클리오네(Clione antarctica)의 경우 이 화학적 방어력이 특히 강해서, 일부 단각류가 클리오네를 직접 잡아먹지 않고 몸에 부착하여 '독 방패'로 활용하는 행동까지 관찰되었습니다.
일본 생선 가게에서 파는 천사 - 관상용 사육의 현실
일본에서는 매년 1 - 3월 유빙 시즌이 되면 홋카이도 연안에서 채집된 클리오네가 전국 슈퍼마켓과 어시장의 선어 코너에 유리병에 담겨 판매됩니다. 2026년 2월에도 홋카이도 아바시리산 클리오네가 병당 2,000엔(세금 포함)에 24병이 입하되었다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판매처에는 항상 '관상용! 먹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사육 방법 자체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구매한 병째 냉장고에 넣어두고, 관찰하고 싶을 때 꺼내서 보면 됩니다. 수온은 0 - 5도를 유지해야 하며, 일반 가정 냉장고(2 - 5도)가 적합합니다. 해수를 1 - 2주에 한 번 교체해 주면 세균 번식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정 사육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습니다. 유일한 먹이인 유각거북고둥(미진우키마이마이)을 일반인이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클리오네는 먹이 없이 평균 반년에서 1년 정도 생존할 수 있지만, 결국 서서히 작아지면서 아사(餓死)하게 됩니다. 전문 수족관에서도 안정적인 먹이 공급이 어려워, 사실상 '죽을 때까지 감상하는' 것이 가정 사육의 현실입니다.
| 항목 | 가정 사육 | 수족관 사육 |
|---|---|---|
| 수온 유지 | 냉장고(2 - 5도) | 전용 냉각 수조(0 - 2도) |
| 해수 교환 | 1 - 2주 1회 수동 | 순환 여과 시스템 |
| 먹이 공급 | 사실상 불가능 | 극히 어려움 (유각거북고둥 확보 난이도 높음) |
| 기대 수명 | 수개월 - 1년 (먹이 없이) | 1 - 2년 |
| 비용 | 병당 약 2,000엔 (한화 약 18,000원) | 전용 수조 장비 수십만 엔 |
| 난이도 | 유지 자체는 쉬움, 장기 생존 불가 | 전문 지식 필수 |
수질 오염에 극도로 민감한 생물입니다. 냉장고 안에서 다른 식품의 냄새가 해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밀봉 용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수온이 16 - 17도 이상 올라가면 수 시간 내에 폐사할 수 있어, 상온에 오래 방치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해양 산성화와 클리오네의 미래
클리오네의 유일한 먹이인 유각거북고둥(리마키나 헬리키나)은 탄산칼슘 껍질을 가진 생물입니다. 해양 산성화가 진행되면 바닷물 속 탄산칼슘의 포화도가 낮아져 이 껍질이 녹거나 제대로 형성되지 못합니다. 스미소니언 해양연구소는 해양 산성화로 인해 유각거북고둥류가 위협받고 있으며, 이는 곧 클리오네를 비롯한 상위 포식자 전체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합니다.
절대적인 편식자인 클리오네에게 유일한 먹이 종의 감소는 곧바로 생존 위기로 직결됩니다. 다른 먹이로의 전환이 거의 불가능한 생태적 특성을 감안하면, 해양 산성화는 클리오네 개체군에 가장 심각한 위협 요인입니다.
한편, 클리오네 자체도 북극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대구류, 고래류 등 상위 포식자의 먹이가 되며, 클리오네 체내에 축적된 고효율 지질은 이들에게 중요한 에너지원입니다.
클리오네는 천사의 외모 뒤에 악마의 포식 본능을 숨기고, 1년 가까이 굶어도 살아남는 경이로운 생존력을 갖춘 극지의 소형 포식자입니다. 투명한 몸으로 차가운 바다를 유영하다가 머리를 쩍 갈라 촉수를 내밀어 먹이를 낚아채는 이 생물의 이중성은,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극적인 반전 중 하나입니다.
일본 생선 가게에서 2,000엔에 살 수 있는 작은 유리병 속 천사가, 사실은 극지 바다의 정밀한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클리오네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관상용으로 키우든, 수족관에서 만나든, 이 생물의 진가는 그 반전의 순간에 있습니다.
해양 산성화로 인해 클리오네의 유일한 먹이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 주세요. 바다의 천사를 지키는 것은 결국 바다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일과 같습니다.